묻다
by Jerohm
091011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우리집 뒷산에 오르려고 노력중. 산 이름은 장산이다. 해발 634미터로 그리 높진 않지만 꽤 산을 타는 맛이 난다. 정상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고 억새밭을 돌아서 해운대 신시가지 쪽 폭포사로 내려오는데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한 시간은 줄곧 올라가고 두 시간 반은 줄곧 내려온다. 아예 기장까지 돌아가서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너무 멀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억새밭에서 신시가지로 내려가는 길 도중에 작은 술집이 있어서 국수, 파전, 두부김치 그리고 동동주를 먹을 수 있는데, 산에 오르는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이다.

처음에는 정상까지 갈 생각도 없이 한 10분 정도 전력으로 체육공원까지 뛰어올라 철봉과 윗몸 일으키기만 하고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 친구와 같이 산에 몸풀러 갔다가 아예 정상까지 가보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꾸준히 정상에 가고 있다. 처음에는 러닝화를 신고 올랐는데 단단히 마음먹고 등산화와 등산바지까지 구입하였다. 등산용 상의는 아버지 것을 빌려입는다. 지난 주부터는 주말마다 애인님과 같이 오른다. 물론 애인님과 나의 목적은 각자 다르다. 언젠가는 같아질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말 산에 많이 갔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시에 합격하자마자 줄곧 산에 갔다. 모의고사가 있는 날이면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대신 김밥 두 줄과 물 한 병 음료수 한 병을 사서 산 정상에서 까먹고 해질 때까지 앉아 있다가 허겁지겁 내려오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친한 친구 8명이 서로에게 쓴 편지를 모아서 장산 정상에 파묻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웠던 짓을 했다 - 분명 영화 '엽기적인 그녀' 때문이었으리라 - . 얼마 전에 몇몇이 모여 산에 갔다가 다시 편지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동안 왔던 비 때문에 병이 깨지고 눅눅해져서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한 친구의 연애 편지는 확실히 판독해낼 수 있었다.

어쨌든 부산에 내려온 이후로 거의 석 달 넘게 산을 꼬박 다녔더니 확실히 몸이 불어나고 체력도 좋아졌다. 처음 산 정상에 오를 때만 해도 폐가 찢어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장산에 오르는 것 정도는 조금 시시할 정도이다 - 오늘은 확실히 그러했다 - . 아직까지 잠이 안 오는 걸 보니 분명 몸에 힘이 남아 있다. 언젠가 애인님이 장산을 무난하게 오르게 되면, 금정산으로 코스를 바꿔 볼 생각이다. 내 궁극의 목적은 네팔의 ABC를 넘어가는 것이다.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by Jerohm | 2009/10/12 00:13 | 일기 | 트랙백 | 덧글(20) |
지역주의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01&newsid=20091011074205402&p=yonhap

"부산지방경찰청은 9월 한달동안 오물투기, 음주소란, 노상방뇨 등 기초질서 위반행위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여 2만 3천 153건을 적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3천 755건에 비해 516% 늘어난 것이다." 부산이 1년 새 516%나 더 질서를 지키지 않는 도시가 되었단 말일까? 아무리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임을 감안해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도시 부산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여기서 지역주의의 정치 원리가 아주 손쉽게 재생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지역주의란 단지 어떤 지역에 대한 우위를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타 지역의 비하만으로도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기사의 반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부산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이명박에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결과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야한다고 결론지었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비난받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부산 사람들이 이명박의 피해자인지 동조자인지를 따져야 할 것 같지만, 이러한 일종의 열광과 분노는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이 주어지기를 거부하는 법이다. 아마 이 정도의 맥락은 연합뉴스 이종민 기자가 의도했거나 혹은 방치했을 것이다.

각자의 개인적 경험들이 저 기사가 요구하는 어떤 의식을 선취하여 새롭게 재조합된다. 그러니까 각자가 거친 운전 습관과 쓰레기 투기, '순결'하지 않은 여성과 군대 경험, 그리고 열광적인 이명박 지지를 경험한 것이 저 기사를 통해 표상되는 부산'만'의 후진성의 또다른 근거가 된다. 이제 부산은 결코 변명할 수 없는,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어떤 나라가 된다. 1년 사이에 기초질서 위반행위가 516%나 늘었다는 사실이 실상 경찰들의 건수채우기 단속이 늘었다는 증거임에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 그게 아니라면 정말이지 매력적인 사회학 연구대상임에 분명하다 - , "부산 시민, '기초질서 외면' 는다"는 기사의 제목은 이렇게 반사회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역주의가 현실도 아니면서 현실인 것처럼 꾸준히 기생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피지배집단의 것도 아니면서 피지배집단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 지역의 비하를 입에 올리는 즉시 손쉽게, 아무런 변명을 할 필요도 없이 싸움은 번져나간다. 다른 변명과 근거들은 그 비하를 듣고 다시 말하는 또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준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이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지역주의는 모든 사람을 피해자 - 피지배집단이 아니다 - 로 만드는 것과 동시에 피해자의 논리가 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획득한다.
by Jerohm | 2009/10/11 22:39 | 메모 | 트랙백 | 덧글(0) |
덕헌 님 개인전 AID'S를 보고

블로그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것 같아 오늘 덕헌 님의 사진전을 보고 짧게 생각한 것들이라도 옮겨놓아 보자.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부산에서의 사진 작업 또한 서울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힘든데,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그렇고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와 소통도 그렇고 감상자를 만나는 기회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부산에서의 작업을 의식적으로 고집하는 덕헌 님의 태도는 그 작업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선 인정받아야만 한다. 덕헌 님은 이미 "더우기 문화적 자산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내가 지방에서 작업한 것을 서울에서 전시하려고 애쓰는 것이 모순인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고, 이 말이 단순한 각오 이상을 의미한다는 사실 - 의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 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서울과 지방의 분리를 단지 전시라는 결과에 한해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 자체의 기저를 또한 의미할 수 있다면, 나는 우선 덕헌 님의 전시회에서 그 '지방성'을 어느 정도 목격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파트의 철거라는 소재에서 서울과는 구별되는 부산이라는 지방의 컨텍스트를 어떻게 구성해 재현해냈는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덕헌 님의 저 말씀이 작업의 시작과 과정 내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점철되어 왔음을 볼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인데, 정작 전시회에서는 내가 희망한 바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덕헌 님의 말씀은 사후적으로 전시회의 절차에만 삽입된 것이었고, 나는 너무 앞질러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나만의 사소한 아쉬움이다.

문제는, 이것이 내게는 좀 더 심각하게 보였는데, 이번 덕헌 님의 개인전은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크기마다 각자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정말이지 특별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의 단편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 작가의 삶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아닌 이상 적어도 하나의 전시회에서 두 개 이상의 이야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만약 꼭 하고 싶다고 한다면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미는 시늉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중해야 할 장면 한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의 크기를 모두 통일시킨다던지 하는. 단체전이 개인전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란 이렇게 명백한 것인데, 개인전에게 있어서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러다 보니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진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집중하지 못한 관객이 스스로에게 계속 집중하도록 설득하는 목소리에 가깝다. 그래서 분할출력해서 이어붙인 덕헌 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이어붙인 사진 한 장 한 장이 떨어지고 찢어지는 상상을 하는 데 앞서 약간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스쳐 지나간다. '오래된 아파트를 부순 것은 알겠는데...' 정도의 감상이랄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덕헌 님의 전시회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나는 덕헌 님이 이전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아파트를 소재로 한 유형학적 사진의 경향을 어느 정도 벗어났으며, 이러한 변화가 덕헌 님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의 현상적 측면에 머물렀던 지난 전시회와는 달리, 철거 시점에 접근하여 이미 익숙한 스펙타클을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다. 결코 밤에 접근할 수 없는 공사판 - 철거는 낮에만 진행된다 - 에서 스펙타클을 재현하려 해도 재현할 수조차 없었겠지만 말이다. 스펙타클은 어둠에 있을 때에야 빛나는 법이다. 또한 철거되는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미 덕헌 님이 '지방적 특질'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역적 친화'는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작업한 결과가 이런 특정한 공간에서의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너무 오랜만에 전시회라는 것을 본 터라 반갑고 또 즐거웠다. "서울은 전시와 문화 행사가 넘쳐난다. 기본적으로 서울에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방민들까지 다들 서울로, 서울로 하니까 문제가 더 심각한거다." 덕헌 님의 이 말이 '표면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내 생활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전시회를 찾아볼 생각도 안 했으니 - 친구가 말해 준 부산의 대안 전시공간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아직 모른다 -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겠다. 덕헌 님은 "더디게 가 볼 생각"이란다. 이 말을 바꾸자면, 나는 더디게 볼 생각이다, 하하.

by Jerohm | 2009/10/11 00:38 | 일기 | 트랙백 | 덧글(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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