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면접을 보러다니다 보니 정장을 입게 된다. 결혼식 때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 정장을 입고 온 친구들 옆에 서서 또 한 명의 친구가 되려면 정장을 입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 구입했던 - 그러나 처음 참석한 결혼식에서는 나만 정장을 입었다 - , 내가 가진 단 한 벌의 정장을 이제 면접관과 어울리기 위해, 아니 면접관이 원하는 '인재상'과 어울리기 위해 입어야 한다. 참 다양한 듯하던 인재상들, 그러나 꼭 정장을 입어야 하는 인재상들. 수많은 인재들의 지향과 포부 사이에는 항상 성실과 긍정이 붙는다, 마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안내원 뒤를 총총이 따르는 정장들처럼. 안내원에는 정장이 따라붙고 정장에는 인재상들이 따라붙고 인재상들에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따라붙고. 남색에 가는 핑크색 선이 그어진 넥타이를 목에 매는 동안 몇 번이고 고쳐 매었는지 - 당연히 익숙하지 않으니까 - 면접관들은 알고 있을까. 넥타이를 고치면서 조금이라도 성실이, 내 것이 아닌 성실이 비죽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 말이다. 애초에 따라붙을 마음은 전연 없었는데 이제는 목에다 개줄을 달아줘도 짖어줄 수 있을 지경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어쨌든 옷을 차려 입는다는 것이 사람을 요상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머리에 왁스를 덕지덕지 바르고 구두 소리를 내면서 지하철을 타고 자동문 앞에 서서 비치는 내 모습을 잠깐 흘겨보면, 나는 지금껏 내게서 볼 수 없었던 어른스러운 - 긍정적인 말들 중에서 어른스러운이라는 말이 그나마 어울린다, 중의적이기도 하고. 나머지 말들은 발랑 까졌다 혹은 허영에 가득 찼다 정도? - 모습에 깜짝 놀란다. 정말 창에 비치는 저 모습으로 '살게' 될 것 같은 예감. 아니, 정장을 입은 즉시 이미 나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자기자신의 장례식의 문상객들을 싣고 달리는 지하철과 버스들은 영원히 순환하는 목적지들을 방송한다. 삶은 차려입는 즉시 예정된 목적지로,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이번 역은 까치산 역입니다. 다음 역은... 유행은 죽음을 조롱하지만 정장은 원버튼 투버튼 쓰리버튼으로 발악한다, 아니 순환한다.
아, 이러면 안돼, 긍정적인 마인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