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것 같아 오늘 덕헌 님의 사진전을 보고 짧게 생각한 것들이라도 옮겨놓아 보자.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부산에서의 사진 작업 또한 서울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힘든데, 시장에 대한 접근성도 그렇고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와 소통도 그렇고 감상자를 만나는 기회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부산에서의 작업을 의식적으로 고집하는 덕헌 님의 태도는 그 작업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선 인정받아야만 한다. 덕헌 님은 이미 "더우기 문화적 자산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내가 지방에서 작업한 것을 서울에서 전시하려고 애쓰는 것이 모순인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 바 있고, 이 말이 단순한 각오 이상을 의미한다는 사실 - 의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 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서울과 지방의 분리를 단지 전시라는 결과에 한해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 자체의 기저를 또한 의미할 수 있다면, 나는 우선 덕헌 님의 전시회에서 그 '지방성'을 어느 정도 목격할 수 있으리라 희망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아파트의 철거라는 소재에서 서울과는 구별되는 부산이라는 지방의 컨텍스트를 어떻게 구성해 재현해냈는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덕헌 님의 저 말씀이 작업의 시작과 과정 내내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점철되어 왔음을 볼 수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인데, 정작 전시회에서는 내가 희망한 바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덕헌 님의 말씀은 사후적으로 전시회의 절차에만 삽입된 것이었고, 나는 너무 앞질러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나만의 사소한 아쉬움이다.
문제는, 이것이 내게는 좀 더 심각하게 보였는데, 이번 덕헌 님의 개인전은 다양한 크기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크기마다 각자 다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라는 공간은 정말이지 특별한 상징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나의 단편적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 작가의 삶을 정리하는 회고전이 아닌 이상 적어도 하나의 전시회에서 두 개 이상의 이야기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보고, 만약 꼭 하고 싶다고 한다면 두 개 이상의 이야기가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꾸미는 시늉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집중해야 할 장면 한 두 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의 크기를 모두 통일시킨다던지 하는. 단체전이 개인전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란 이렇게 명백한 것인데, 개인전에게 있어서는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이러다 보니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이것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진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그 시간 동안 집중하지 못한 관객이 스스로에게 계속 집중하도록 설득하는 목소리에 가깝다. 그래서 분할출력해서 이어붙인 덕헌 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이어붙인 사진 한 장 한 장이 떨어지고 찢어지는 상상을 하는 데 앞서 약간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스쳐 지나간다. '오래된 아파트를 부순 것은 알겠는데...' 정도의 감상이랄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덕헌 님의 전시회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나는 덕헌 님이 이전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아파트를 소재로 한 유형학적 사진의 경향을 어느 정도 벗어났으며, 이러한 변화가 덕헌 님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의 현상적 측면에 머물렀던 지난 전시회와는 달리, 철거 시점에 접근하여 이미 익숙한 스펙타클을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 그 자체만으로도 그렇다. 결코 밤에 접근할 수 없는 공사판 - 철거는 낮에만 진행된다 - 에서 스펙타클을 재현하려 해도 재현할 수조차 없었겠지만 말이다. 스펙타클은 어둠에 있을 때에야 빛나는 법이다. 또한 철거되는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미 덕헌 님이 '지방적 특질'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역적 친화'는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작업한 결과가 이런 특정한 공간에서의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너무 오랜만에 전시회라는 것을 본 터라 반갑고 또 즐거웠다. "서울은 전시와 문화 행사가 넘쳐난다. 기본적으로 서울에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지방민들까지 다들 서울로, 서울로 하니까 문제가 더 심각한거다." 덕헌 님의 이 말이 '표면적으로는' 지금까지의 내 생활과 너무 잘 맞아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전시회를 찾아볼 생각도 안 했으니 - 친구가 말해 준 부산의 대안 전시공간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아직 모른다 - 나의 게으름을 탓해야겠다. 덕헌 님은 "더디게 가 볼 생각"이란다. 이 말을 바꾸자면, 나는 더디게 볼 생각이다,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