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고등학생 때 교지편집부에서 서클활동을 했다. 다른 고등학교의 교지편집부도 마찬가지겠지만, 겨울 방학 막바지에만 교지편집을 담당했고 그 외의 시간은 문예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서클활동 시간에는 보통 책을 읽거나 시험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했고, 학교 축제 기간에는 허접한 자작시를 벽에 주렁주렁 걸어놓고 마치 대가의 작품인양 설명하곤 했다. 서클 지원 예산을 기장과 총무가 삥땅쳐서 동래 근처 소위 다락방에서 술 마시는 데 썼던 건 예사였다. 고등학교 서클들이 으레 그렇듯이 날로 먹으면서 놀 궁리만 했던 것이다.
그저께 저녁 때 같이 서클활동을 했던 한 '후배'에게서 얼굴 좀 보자고 연락이 왔다. 술자리에는 나보다 한 기수 작은 후배 두 명과 두 기수 작은 후배 두 명이 있었다. 자리에 가자마자 앉아있던 후배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형님 오셨습니까"라는 인사와 함께 90도로 꾸벅 허리를 굽혔다. 난 내 기억속에 이렇게 인사받은 경우가 이전에 또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니, 6년만에 만나는 거니까 대학교 1학년 때 지금처럼 인사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당황해서 자리에 앉는데 그때부터 후배들은 자리가 끝날 때까지 꾸준히 말을 높였다. 말을 낮추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내 제안은 술안주거리도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많지 않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등학교 서클 이야기만 듣고 또 한 것 같다. 후배들한테 불리는 내 별명을 까먹고 있다가 다시 상기하게 되었는데, 웃을 수만은 없는 별명이었다. 후배들은 언제부턴가 나를 "빨때기 선배"라고 불렀다. 빨빨거리면서 때기잡는다 - 소위 가오를 잡는다 - 는 뜻인데, 축구할 때는 빨빨거리면서 잘 돌아다니고 후배들을 갈구거나 때리기 직전 - 우리 기수 때는 때린 적은 없었다고 한다, 훔치긴 했지만 많이 훔치지는 않았다는 식의 위안이 필요했다 - 까지 분위기를 몰고 갈 때는 때기를 잡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정말 그랬다. 밀대걸레 자루를 휘두르는 역할은 하지 않았지만 동기 기장에게 때리라고 자루를 넘겨주는 역할은 잘 했던 것 같다. 이런 위계질서 역할 놀이는 몇 달만 지나도 낯뜨겁고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그 당시에는 이 세상 무엇보다 심각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1학년 때의 문예부 생활은 다른 서클에 대한 나의 적의를 키웠다. 축제 때가 되면 힘없이 다른 서클들의 입김에 치이면서 공간이 구석으로 밀려나가곤 하는 모습을 보았고 - 그때 선배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놀기를 잘하는 것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문예부라는 곳이 원래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 나는 2학년 때 두고보자는 마음으로 중학교 3학년을 다니는 동네 아이들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친구가 많은 애들을 끌어모아서 곧장 문예부에 가입시켰고, 얘네들이 2학년이 되자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얘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밀대걸레 자루를 뽑아들기 시작했다. 후배 기수에게만 휘두른 것이 아니라 다른 서클에 찾아가서까지 휘둘러서 문예부 예산이나 공간에 대해 시비걸지 말라고 소동을 피웠다고 한다. 내가 원했었던 '힘센 서클'이 이런 모습임을 여태껏 난 알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술자리에서 들으면서 나는 그들을 '후배'로 대우해주는 것이 그들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편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도착하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굽히는 덩치들의 모습에서 이미 알았어야 한다. 내가 '덩치'는 아니지만 덩치들에게 대접받은 시간을 나보다 덩치들이 잘 기억하고 있으니, 새삼 그 기억들을 불쾌한 것으로 바꾸면서까지 술자리를 엉망으로 만들 필요는 없겠다는 것을. 유도가 몇 단이네 한 판 붙어보자 농담하는 0.1톤 '후배'들에게 찌그러져 있으라고 욕지거리 하는 '선배' 역할이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내가 시작한 우스꽝스러운 역할 놀이는 내가 끝내고 싶다고 해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