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곧잘 "야, 걔는 좀 센스가 없어" 혹은 "센스가 있네" 하는 말들을 듣고 또 하곤 한다. 정작 그 '센스'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대개 가슴에 퍼뜩 와닿는 인상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지지부진하게 말한다면 그러했는데, 어제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읽다가 이 '센스'에 관한 아주 좋은 예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조금만 더 진화되고 싶다
진화되어야만 한다
아니라면 아아 차라리 퇴화되고 싶다
어항에 알맞는 조그만 사이즈로
같은 시구나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같은 시는 재미있다. 앞에 인용한 시구에서, 퇴화되고 싶다는 퇴화하고 싶다의 소극적, 부정적 형태이며, 물고기와 같은 조그만 사이즈로 퇴화하고 싶다는 것은 숨고 싶다와 예쁘게 보이고 싶다의 이중적 교직이다. 그 이중적 교직이 김승희의 개인 심리학의 비밀이다."(p232-233)
왜 퇴화하고 싶다는 말 대신 퇴화되고 싶다는 말을 쓰는지, 하필 "어항에 알맞는 조그만 사이즈"를 원하는지를 김현은 정말이지 '센스'있게 읽어낸다. 내가 김현의 글을 읽지 않고 이 시를 접했더라면 '퇴화되고 싶어하는 주제에 크기까지 정해달라니 원하는 게 많군' 혹은 '크기도 아니고 사이즈라니, 미국 어항에서 퇴화되고 싶니' 정도만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조금만 더 진화되고 싶다
진화되어야만 한다
아니라면 아아 차라리 퇴화되고 싶다
어항에 알맞는 조그만 사이즈로
같은 시구나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같은 시는 재미있다. 앞에 인용한 시구에서, 퇴화되고 싶다는 퇴화하고 싶다의 소극적, 부정적 형태이며, 물고기와 같은 조그만 사이즈로 퇴화하고 싶다는 것은 숨고 싶다와 예쁘게 보이고 싶다의 이중적 교직이다. 그 이중적 교직이 김승희의 개인 심리학의 비밀이다."(p232-233)
왜 퇴화하고 싶다는 말 대신 퇴화되고 싶다는 말을 쓰는지, 하필 "어항에 알맞는 조그만 사이즈"를 원하는지를 김현은 정말이지 '센스'있게 읽어낸다. 내가 김현의 글을 읽지 않고 이 시를 접했더라면 '퇴화되고 싶어하는 주제에 크기까지 정해달라니 원하는 게 많군' 혹은 '크기도 아니고 사이즈라니, 미국 어항에서 퇴화되고 싶니' 정도만 생각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