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by Jerohm
센스에 대하여
요즈음 곧잘 "야, 걔는 좀 센스가 없어" 혹은 "센스가 있네" 하는 말들을 듣고 또 하곤 한다. 정작 그 '센스'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대개 가슴에 퍼뜩 와닿는 인상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지지부진하게 말한다면 그러했는데, 어제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읽다가 이 '센스'에 관한 아주 좋은 예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조금만 더 진화되고 싶다
진화되어야만 한다
아니라면 아아 차라리 퇴화되고 싶다
어항에 알맞는 조그만 사이즈로

같은 시구나 <내가 없는 한국문학사> 같은 시는 재미있다. 앞에 인용한 시구에서, 퇴화되고 싶다는 퇴화하고 싶다의 소극적, 부정적 형태이며, 물고기와 같은 조그만 사이즈로 퇴화하고 싶다는 것은 숨고 싶다와 예쁘게 보이고 싶다의 이중적 교직이다. 그 이중적 교직이 김승희의 개인 심리학의 비밀이다."(p232-233)

왜 퇴화하고 싶다는 말 대신 퇴화되고 싶다는 말을 쓰는지, 하필 "어항에 알맞는 조그만 사이즈"를 원하는지를 김현은 정말이지 '센스'있게 읽어낸다. 내가 김현의 글을 읽지 않고 이 시를 접했더라면 '퇴화되고 싶어하는 주제에 크기까지 정해달라니 원하는 게 많군' 혹은 '크기도 아니고 사이즈라니, 미국 어항에서 퇴화되고 싶니' 정도만 생각했을 것 같다.
by Jerohm | 2009/09/23 11:01 | 일기 | 트랙백 | 덧글(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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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idin at 2009/09/23 13:06
오픈마인드!
Commented by Jerohm at 2009/09/23 13:27
시러.ㅎㅎ
Commented by 이야기 at 2009/09/23 17:30
몇 해 전에 기차를 탔는데 한 어르신이 말씀을 붙여 오셨었어요.
"자네 센스가 뭔지 아나?"
"네, 감각이지요."
"아니. 눈치, 코치를 보고 센스라고 하는 거라네."
"네, 눈치나 코치가 다 감각인 것이지요."
그 대답 이후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답니다.
Commented by Jerohm at 2009/09/23 20:57
이야기 님은 확실히 센스가 있으시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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