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by Jerohm
역사학개론20080414
자료 : Introduction_of_History_6.hwp

역사가들에게 사료는 우상이다. 전문 역사가와 아마추어 역사가를 구분 짓는 것은 사료에서부터이다. 사료를 비판하면서 있을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프로와 아마추어가 갈린다. A급 역사가와 B급 역사가를 구분하는 기준은 해석이다. 죽어 있는 사료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가 없는가다. B급이라도 사료비판은 철저하다. 석사는 3년이 걸리지만 박사는 기한이 없다. 10년 이상 쏟아부은 사람이 잘난 점은 이 얘기 밖에 할 것이 없다. 사료도 중요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장식이 섞여 있는 것도 포스트모던에서는 사료라고 보고 텍스트 일반으로 해소해 버린다. 일제히 작업에 들어갈 때에는 사료 외에는 아무 얘기도 할 수가 없다. 사료없이 연구를 할 수는 없다. 즉 사료 없이 연구 없다는 말은 타당하다. 사료의 한계를 강조해도, "최소한 사료에는 적극적으로 그 시대 그 사람이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이건 아니라는 veto의 권리가 있다." 아날학파에서는 어떤 것을 사료라고 하는지에 대해, 모든 것을 사료화한다고 했다. 도공의 깨트린 도자기에 남은 그 지문 자체도 소중한 사료이고, 깨진 기와조각이나 숭례문 나무조각, 갑골문자도 그 시대를 조명하는 서치라이트가 된다. 우리는 1차, 2차 사료를 구분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사료를 어떻게 비판할 수 있나 하는 외적, 내적 비판 문제를 다룬다.

사료란 무엇인가? 과거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서 근거하는 모든 것이다. 과거의 행위가 담겨있는 모든 것이다. 화순을 여행했을 때 고인돌 공원에 갔는데 돌 덩어리가 몇 개 흩어져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답사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해줬다. 당일치기 강화도에 답사 갔었는데, 북방식 고인돌을 보고 미리 준비한 팀이 고인돌 무게를 재려고 했다. 1톤의 돌을 1킬로미터 옮기는 데 설명하는 공식도 말했다. 무게를 재는 데 큰 건 10톤이 넘었고, 돌을 가져올 곳도 몇 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2km 떨어진 곳에서 7~8톤의 돌을 끌어오는 데 몇 사람이 필요한가? 이제 선생님이 나서서 계산해 준다. 기원전 몇 천 년 전에 여기에 묻힌 사람은 수 천 명을 움직인 주술사이다. 그렇게 죽은 돌이 살아있는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땅을 조금씩 팠는데 고인돌이 건조된 당시의 흙을 채취해 시료를 분석하면 꽃씨 같은 것도 남아 있다는 설명을 해 준다. 그 순간 고인돌이 널린 것은 사람이 많이 살았다는 드라마가 연상되기 시작한다. 문자가 없어도 선지식을 가지고 보면 일정 부분 해명이 가능하다. 이런 것이 소중한 사료이다.

랑글루와는 "사료 없이 역사 없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감할 것이다. 사료를 형태에 따라 분류해보자. 1) 문헌 자료. 2) 사물 or 작품. 3) 사실 or 상태. <역사학 개론>이 주로 참조한 책이 드로이젠의 책이다. 사실과 상태라고 하면 느낌이 있지? 확인해 보자. 종이에 인쇄된 기록 말고도 거북이 등짝이나 청동 거울에 새겨진 것들도 다 문헌 기록이다. 비문들도 소중한 사료이다. 광개토대왕비는 굉장히 중요하다. 몇 글자를 어느 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남부를 왜구가 점령했다거나, 간간이 노략질하던 왜구를 광개토왕이 손봤다는 반대의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

처음 광개토대왕비 이야기를 접한 것은 고 3 올라갈 때 신채호 책을 읽었을 때다. 만주 땅을 유랑하다가 이야기를 듣고 6미터가 넘는 비문에 서서 본 순간 벅차서 울었고, 갑자기 비가 온 순간 석회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아, 조작됐구나 하고 또 울었다고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울었다. 그리 어설프게 조작이 가능할까, 하고 나중에 또 생각했지만 말이다. 1972년에는 재일 사학자가 세 차례에 걸쳐 석회를 덧칠하는 작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황상 증거와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 장수왕 때 비 세웠다는 점 때문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위엄을 세우고 후광을 보충받으려 하는데, 거기서 시시콜콜 다른 나라 얘기를 하겠나. 선택과 집중, 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촘촘히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 얘기를 하다가 왜구 얘기하면 웃기잖아. 어쨌든 동일한 사료가 역사 해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료가 있다. 신사임당의 재산 분할 문서가 있는데, 여기에 보면 신사임당이 아들과 차별 없이 재산을 상속 받는다. 임진왜란 이전에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제사를 딸이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통치가 붕괴되니까 신분제 질서를 고착화시키면서 성리학을 국정 철학으로 삼고 남존여비 얘기가 나온다. 사적 세계에서는 별 차별이 없었다. 한국사를 공부할 때 가끔 상상해 봤다. 고물상을 뒤지다가 심봤다 그러면서 문헌을 찾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봤는데 알고 보니 그런 건 이미 나올 대로 다 나와서 꿈꾸지도 못한다고 한다. 나올 수는 있어도 값이 비싸서 우리가 살 수도 없고, 그런 것들은 미리 연락이 되어서 인사동 통해서 팔린다고 한다. 어쨌든 현대사를 공부할 때 평전, 회고록을 많이 봤다. 장준하 일대기나 김전엽 선생의 광복군 시절 일대기를 보면서 엉성한 이미지를 수정하는 기회가 되었다. 김준엽이 장준하와 같이 OSS 출신이다. 2차 대전 끝날 때 정보교란과 주요시설 폭파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OSS이다. 열심히 게릴라 훈련을 받고 중국에서 인천으로 날아갔다. 김구는 굉장히 초조해서 일본 패망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인천으로 가는 도중에 무전을 받았단다. 다시 중국에 돌아오니 김구가 일본이 졌다고 그러면서 울았다고 했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못 찾았으니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단다. 이렇게 회고록을 통해서 내밀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문자로 자신의 생각을 남길 때 계속 검토하게 된다. 단순히 기억에 의존하면 나중에 까 먹게 된다. 생활하면서 굉장히 흔들리고, 인상적인 것이 현상적인 것을 압도한다. 1) 문헌 사료를 굉장히 존중한다. 사물과 작품들을 보면 훗날 중요성 밝혀지는 게 복식, 화폐, 생활용품, 동상, 그림, 기념물, 지도, 건축물 등이다. 예전에 TV를 보러 가서 안방에 20명이 모여서 보고 그랬다. 그 당시 광해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순재였는데 깔끔한 미남에 폭군의 역할을 잘 했다. 그런데 그 때 광해군이 술을 마시는데 놋그릇에다 술을 마셨다. 지금 TV를 보면 놋그릇이나 놋주전자는 절대 안 나온다. 또 수행 내시가 왕을 따르는데, 그 때는 키가 작고 고개가 삐뚤고 여성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보면 호위 내시 하나가 정조를 위협하더라. 이런 걸 보고 혼란스러웠다. 문헌 연구, 복식 연구를 통해서 잘 안 드러났던 내시의 모습 같은 것이 정리되면서 발전했고, 하나하나 고증에 신경을 쓰는 단계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미지의 변화, 연구의 변화는 소설, 영화의 변화도 가져온다.

2) 또 하나는 그림이다. 보티첼리의 그림 중에 '비너스의 탄생'을 보면 비너스는 목이 굉장히 가늘고 쇄골이 움푹 패여있다. 현대에 와서 미국의 의학자가 이 사람은 폐병 3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당시 밀폐된 궁중에서 폐병이 심했는데, 그것을 보고 중년층에도 눈썹을 새까맣게 하고 창백하게 다니면서 상류층을 흉내내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티첼리의 그림은 파격을 가져온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을 육지 쪽으로 흩날린다. 가만히 있는 자세가 아닌 자연스런 자세를 묘사해냈다. 이렇게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지만 르네상스에서의 변화 추구가 그림에서도 나타났다.

이 사료는 그 시대 해석의 변화를 조금씩 가져온다. 의미를 담고 운반하는 개체가 된다. 카타콤Catacomb을 보고 건축학자는 건축 양식을 떠올리고, 종교학자는 통곡하고, 역사학자는 카타콤에 어떤 사람이 모이나 그런 것을 볼 것이다. 사물의 경우 해석하는 여지에 따라 굉장히 내용이 달라진다. 과거에 도상학이란 게 있었다. 노란 해가 정신병 증세를 나타낸다는데, 도상학은 그렇게 판단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경험적 확신이 안 되면 과학의 위치를 위협받는다. 문헌 사료와 함께 해석할 때 오해의 여지를 벗어날 수 없다. 예전에 동학 운동과 관련된 답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전봉준 생가 등을 둘러보았다. 그 때 전부 사학과 교수였고 한 명만 충청대 건축사학과 교수였는데, 그 교수는 말없이 뒤에서 따라왔다. 나중에 식당에서 말을 한 번 걸어봤는데 완전히 전문 지식에 압도당했다. 그 때 모든 것을 사료로 판단하려면 전문 지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제도들, 예컨대 국가, 교회, 학교, 도량형, 방언, 민속춤 등이 있다. 가톨릭 신앙은 못 느끼겠지만 개신교 결혼식을 가면 하객이 좀 곤혹스럽다. 일어섰다 앉았다를 계속 반복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다 필요없고 존중할 것은 성찬과 해석 뿐이다. 시골로 갈수록 예식이 길어진다. 난 이것이 개신교의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종교 개혁 이후에 개신교 이렇게 다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 루터파 교회는 성사의식이 남아 있었다. 잔에다 포도주를 큰 잔에 다 따라서 돌려마시고 그러더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수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도량형 같은 것도 중국 내에서 다 달랐다고 한다. <삼국지>를 보면 영웅호걸들이 등장한다. 8척 장수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무조건 컸다는 건가? 척은 지금처럼 30cm가 아니라 옛날에는 20cm였다. 자가 문제 있으면 근도 문제가 있었겠지. 30kg이 아니라 10kg 정도 되었다고 한다. 고대 분묘를 발굴해보면 키가 작았다. 서양 중세 때 평균 기사의 사이즈가 155~160cm였다. 몸이 작아도 훈련을 받아서 딴딴하거나 뭐 그렇겠지. 스튜어트 휴즈 하버드 교수가 서양 중세 박물관을 다니면서 깜짝 놀랬다더라. 석주선 박사 같은 사람은 옷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무조건 뛰어가서 발굴했다. 그런 티 안나는 노력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고정되지 않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고, 변화상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1차사료는 사건이 벌어질 때 겪거나 목격했거나, 혹은 듣고 글로 정리한 것이다. 2차사료는 문서로 정리된 것들이나 시차가 벌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동학 농민군의 입장에서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그 당시 글을 쓸 수 있었던 사람은 지방 유생이나 토벌하러 온 사람, 일본군 밖에 없었다. 동학 문집이 몇 십년 지난 후 나오고, 그러니 왜곡이 심하고 지레 짐작하게 된다. 공문서일수록 위조가 심하다. 사문서 가운데는 누가 볼 것이란 생각을 안 하니 진솔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 편지랑 일기가 중요한 사료가 된다. 보통 사람들은 베버가 전통 역사학과 단절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베버가 전통역사학과 끊을 것 같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베버를 계승발전을 통해서 근대 사학으로 간 수정주의라고 보았다. 그 때 역사학자들을 뒷다마 까는 베버의 편지와 일기를 접했다. 정치권과 가까운 슈몰러Gustav von Schmoller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베버는 이 친구한테 교수가 될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슈몰러의 70회 생일 때 슈몰러는 베버한테 헌시를 요구했고, 베버는 싫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편지에서 뒷다마를 깐다. 역사주의적 경제사가에 대한 이중적 판단이 보인다. 여기서 대차대조를 해 보고 해석을 가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는 읽히기 위해 일부러 일기를 쓰는 경우도 등장하지만 보통 그러질 않잖아.

사건 이후에 약간 시차가 있어도 회고록이나 답사기는 1차 사료로 분류된다. 김준엽 선생의 회고록은 일체의 일기와 메모를 6.25때 관악산 넘을 때 다 잃어버린 상태에서 기사랑 맞춰보고 기억에 의지해 쓰인 것이다. 관악산을 넘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이랑 기록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아이를 선택하고 기록은 관악산 어딘가에 파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딘지 몰라서 못 찾았다. 그래서 그런지 읽다 보면 의미 부여가 과도하다는 느낌이다. 사후 생각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신문기자의 보도도 1차 사료이다. 그 이외는 다 2차 사료가 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절대 1차 사료가 아니다. 그런데 석박사 논문을 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왜 1차사료에 넣나?

사료 비판은 크게 외적 비판과 내적 비판으로 나뉜다. 외적 비판에는 진위 비판이 있고, 어떤 기능이 생성된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생성시기 비판, 그리고 정확성 비판이 있다. 일관된 논리의 축을 따라서 갈 때, 의미의 결을 따라갈 때 비약적 부분이 나올 수도 있고 그러면 사료의 문제가 발견될 수도 있다. 내적 비판과 외적 비판은 사료 비판의 출발점이다. 진위 비판은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것이다. 국사의 기록을 보자. 과거의 왕조가 세워지고 난 후 역사를 새로 쓰면서 왕조의 정당성을 강조한다. 궁예라는 인물은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하고 한 나라까지 건설했으니 호걸 중의 호걸일 것이다. 그런데 고려의 기록 중에 궁예의 출신이 큰 지렁이라는 게 있다. 예쁜 딸이 잘생긴 외간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는 걸 본 집안 사람들이 딸을 추궁하여 그 남자의 허리에 몰래 줄을 묶으라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따라가 보니 왕지렁이 허리에 줄이 묶여 있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경쟁상대라면 지렁이는 좀 참담하다. 이렇게 공식 기록이라 할지라도 왜곡이 심하다. 진위 비판을 하면 답이 명확해진다. 오랜 통설, 믿음이 민중 세계에 영향을 끼친 것은 soft fact로서 가치가 있다. 조작 주체는 누구고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문헌학자인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진장이 위조됐다고 비판한다. 라틴어의 어휘 변화와 관용구를 추적해 보니 150년 후 활동한 인물들의 언어가 그 문서에 보였다는 것이다. 관용구로 150년 후의 것이라고 비판한다. 위조 주체는 교황청과 성직자이다. 중세 사료를 믿을 수 있냐는 것이다. 요즘에 와서야 남아 있는 중세 기록 중 80%가 위조라는 것이 밝혀졌다. 작년에 내가 열쇠가 없어서 4시간 동안 집에 못 들어갔다. 그 시간에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이 맞는 것이 없어 I'm Legend를 봤다. (학생들 : 어으~) 보니까 엉성하더라.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인류가 멸종되는데 한 사람이 면역 백신으로 살고, 꼬마 하나랑 여인 하나가 추가로 산다. 백신을 전해줘서 뒤에 인류가 다시 살아났다는 내용이다.

뗄감의 원리가 있어서 옛날 것일수록 위조된 경우가 많았다. <관자>가 대표적이다. 꼼꼼한 사람을 박학파라 불렀는데, 청대 고증학을 들 수 있다. 특히 양계초라는 사람이 유명하다. 사료비판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위서를 잘 판별했다. 양계초는 전대 기록이 전혀 없거나 갑자기 새로운 내용이 등장하면 위서라고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화랑세기>는 이와 관련된 논문도 몇 편 있다. 논문들을 읽어보면 글 구성이 깐깐한 것도 많다. 위서에 근거한 해석은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필사본은 믿을 수 없다는 철칙도 있다. 한편, 책 속에 있는 사건이 한 참 후에 나온 게 있으면 위서인데 <관자>가 그러했다. 그렇다고 <관자> 전체가 위서라는 얘기는 아니고 부분적으로나마 위서라고 보고 있다.

그 시대의 유행한 문체와 다른 것도 비판 지점이 된다. 정조가 개혁할 때 탕평책을 써서 젊은 인재들을 등용했다. 드라마를 보니 과거 시험도 보이콧하고 뽑더라. 그런데 정조는 그 당시 연암 박지원과 갈등한다. 직접 정치투쟁에 나가면 기반이 약하니 문화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그 일환으로 고문정책을 취한다. 박지원의 신문체는 시대에 맞지 않다고 금지했는데, 박지원은 그를 거부하고 개긴다. 박지원의 기반이 탄탄하다 보니 손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합격한 문서 가운데 운문이 아니면 위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시대 상황도 근거가 될 수 있다.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고 한다. 요즘은 안 그런데, 아이도 맡기고 처가에 가서 친가보다 오래 있고 그러잖아. 친가에 가서 여자들은 음식할 때 남자들은 거실에서 고스톱 치면서 "안주 가져와~" 그런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을 하면서 눈치를 보고 말끝에 힘이 없어졌다. 사회현상이 변화한 것인데, 여기에 주목하면서 미래에 이 때 나온 책들 중에서 신 모계사회의 문제가 안 나타나면 위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성시기를 비판하기도 한다. 필사본을 보면 세로로 써 내려가다가 비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 몇 글자를 추가해서 의미의 반전을 이룰 수도 있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 정약용이 등장해서 규장각의 목록을 본다. 내용을 보다가 책을 가지고 바깥에 나간다. 햇빛을 비춰보니 추가로 쓴 글씨가 있었다. 먹이 얉게 베어 있었던 거다. 이윤기의 그리스 신화를 보지 말고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신화를 봐라. 신들의 이름이 엄청나게 등장한다. 몇 번 반복하면 줄거리가 잡힌다. Uranos, Kronos, Jeus로 변천하는 맥락이 이해된다. Uranos는 할아버지고 Kronos는 아버지다. Uranos는 Kronos에게 거세당했다. Kronos는 자신도 그리 될까 두려워 해서 아이를 다 삼킨다. Jeus는 도망갔다가 와서 Kronos와 싸워서 승리한다. 토인비의 세계사 책을 보면 그리스 신화는 세 층위로 나뉜다고 말한다. 그리스 문화도 세 층위가 있고 이것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후대 민족도 앞 시대의 신화 전체를 갈아엎지 못하니, 다만 신의 관직을 바꿀 뿐이다. 이렇게 생성 시기의 변화를 잡아낼 수 있다.

정확성 비판은 역사가의 본령이다. 중세는 기적의 시대였다. 기적이 사료에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현대 과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안 믿는다. 지금도 유명한 스페인 파티마의 기적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아이들이 세 개의 예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황청이 조사가서 알아내고는 또 함구령을 내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성모 마리아가 교황청의 전통을 인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마리아 동상은 심심치않게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면, 정확성 비판에서는 이런 내용을 그대로 수용해야 할까? 아니다. 학자들은 중세 때 사람들이 굶고 굶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4일 정도 굶으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굉장히 싫다. 트럭이 와도 차라리 쳐라 그런다. 헛것을 보고 그것을 사실로 믿고 집단 광풍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믿음이 생활 세계를 구속한다는 것은 여전히 soft fact로 인정한다. 유독 중세에 와서 그러했나 보는 것이 외적 비판에서 건져내어야 하는 것이다.

군대에서 영천에서 훈련을 받는데 사람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3, 4주는 낮은 훈련을 받고, 그 다음 4주는 하사관 훈련, 마지막은 장교 훈련이라는 살 떨리는 훈련을 받는다. 외적 비판을 마치고 석사를 받고 박사 학위를 준비한다. 전도양양한 역사가가 될 것인가는 내적 비판에서 갈린다. 수미일관한 논리적 연관 관계가 있는가 따지는 것이다. 내용일수도 형식일수도 있다. 이 시대 남성 소설 작가 중에서 가장 주목 받는 작가는? 김훈이다. 김훈을 대학 1학년 때 처음 알았다. 여행기를 봤는데 글을 너무 잘 쓰더라. 한국일보 매니아가 되서 김훈의 글만 봤다. 배고픈 가운데 작품을 쏟아내면서 작은 사고를 친다. 어떤 비평가가 껀수를 잡았다. 김훈의 소설 내에 연도를 틀리게 썼다고 비판한 것이다. 김훈을 문제적 인간으로 보고 눈에 불을 켜고 보면 잡히는 게 있다. 꼼꼼하게 보면 연도, 서술, 논리에서 비껴가는 부분이 생긴다. 내적 비판의 최후는 작가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김훈은 쌀독에 쌀이 떨어져도 개기면서, 죽음을 예감하면서까지 글을 썼다는데, 이렇게까지 글을 쓴 이유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뎌서,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나온다. 김소진의 소설을 본 비평가는 "아버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안타까움이 소설에 묻어났다는 것이다. 작가 자신도 잘 몰랐던 것을 그렇게 잡아낸다. 작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것이 묻어나온다는 거다.

랑케는 정치사가였다. 랑케가 정치학에 가까웠던 것은 랑케가 살던 때가 노동계급이 탄생하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19세기 초반에 움튼 사회경제사에 대한 씨앗들을 보았다.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면서 또다른 모습의 랑케를 잡아낼 수 있겠다. 의도하지 않은 것까지 보고 재구성하는 것, 그런 것을 하는 역사가는 세 가지 공통점 - 자질 - 이 있다. 1) 기록자의 신용이다. 곡학아세를 안 하면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폴리페서라는 말을 한다. 현실정치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게 아니라 직접 들어가려 하면 노골적인 정치 지형이 드러날 것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게 사마천이다. 꾸밈없이 역사를 서술하라는 아버지의 유산만 가지고 역사를 본다. 2) 능력이 따라줘야 한다. 동양에서는 세 가지를 다 꼽는다. 문장이 수려해야 하고, 지식 자체가 풍부하고 넉넉해야 한다. 또 인문과 예술에 통달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계산과 지속과 희망과 고뇌로 뒤엉켜 있다. 그걸 이해하면 소양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 3) 기록의 진실도 있어야 한다. 두 기록이 영향을 준 적이 없는데 서로 일치할 때 그 기록들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비판의 다음 단계가 해석이다. 비판을 거쳐서 한 인물, 시대, 민족으로 나아가는 해석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방향이 어떻든지 간에 반드시 훈련받아야 할 게 이 2가지이다. 랑케가 학생들에게 요구한 것이 다름아닌 내적 비판과 외적 비판이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야지. 이것을 계속 겪어봐야 한다.
by Jerohm | 2008/04/19 15:00 | 수업 | 트랙백 | 덧글(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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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막대기 at 2008/04/22 12:34
사료가 이렇게 중요한데,양키놈들은 왜 동물성 사료를 쓰고 지랄이야.ㅡ.ㅡ;;;
재미있게 잘 앍었어,계속 수고해 ㅎㅎ;;
Commented by Jerohm at 2008/04/22 13:20
하하^^;
Commented by pierce at 2008/05/17 13:28
오랜만에 들렸다가 좋은 자료를 보고는 냉큼 긁었습니다. 작년에 들었던 수업인데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웠습니다. 학생들이 발표하기 전까지는 -_- 암튼 잘 둘러보고 갑니다.

저는 요즘 그냥 농구나 하고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Jerohm at 2008/05/17 17:51
공부 열심히 해~
Commented by aidin at 2008/05/18 16:51
한국에서도 동물성 사료를 쓴다던데 말이지.
요즘 한국 기독교 역사를 배우고 있는데
역사학도 꽤나 재미있는 것 같아.
우리학교엔 인문학 전공이 거의 없어서 안습.
Commented by Jerohm at 2008/05/18 17:54
한국 기독교 역사 같은 거 재미있겠다. 블로그 같은 데 좀 정리해서 올려두고 하면 안되겠니?
Commented by aidin at 2008/05/18 22:52
교수님이 오른쪽 주류 기독교 보다는 왼쪽이셔서 도전이 되고 있단다. 정리는 했는데 너처럼 강의위주가 아니라 교수님이 하신 필기위주라서 조금 올리기 민망함. 교수님도 학자다우시고 하버드 등에서 공부도 많이하셔서 역량도 있으신것 같고. 즐겁게 듣고 있어. 기회되면 올리마.
Commented by Jerohm at 2008/05/19 03:43
기회 안 되도 올려줘. 열매 좀 따먹고 싶은걸.^^
Commented by aidin at 2008/05/19 22:46
욕심쟁이구만!
내가 성적이 안좋은 이유가 칠판에 쓴 것만 필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노트북을 들고가서 나도 다 쳐버릴거야-_-
그렇게 해서 다음에 정리되면 올리마. 앞부분은 뼈대뿐이라..
Commented by Jerohm at 2008/05/20 00:50
난 필기랑 상관없이 성적이 안 좋아. 수업을 잘 안 들어가서 그런가..?^^;
Commented by 건어물여자 at 2008/11/21 22:09
역개론을 이렇게 열심히 듣는 학우는 처음 봐요
저는 새내기 때 아무 생각없이 들어서 그런가봐요 ^^;;
아님 저를 가르쳤던 교수님은 이렇게까지 안 하셨던 분이시거나ㅠㅠ
Commented by Jerohm at 2008/11/22 00:02
제가 들은 역개론 수업은 최호근 선생님께서 강의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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