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by Jerohm
역사학개론20080317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카가 이야기한 이후, 의견 불일치를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 과거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카의 생각을 빌려서 얘기해 보자. 역사이론가는 일종의 비평가이다. 비평가가 다른 역사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오기도 발동하고 그렇다. 그래서 나는 3년동안 홀로코스트 연구해서 단행본을 냈다. 스탠다드 만드는 데만 몇 주가 걸렸다.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책을 일단 뽑고 봤는데,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믿을 글과 믿지 못할 글을 미리 나눠야 했다.

홀로코스트는 처음부터 히틀러와 친위대가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가진 범죄라는 것이 유대 역사가의 견해이다. 반면에 독일 우파 역사가는 홀로코스트를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닌, 전시상황에서 일어난 일로 파악했다. 노동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에서 증폭된 유대인을 경험하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나, 그래도 실행에 옮기긴 어렵다. 사실 유대인 절멸을 히틀러가 외쳐도 이것은 정치전략일 뿐이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후방 게릴라전이 퍼졌고, 결국 전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 작전상 절멸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또한 홀로코스트 희생자에 대해 한쪽에서는 600만이라고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최대 30만이라고 한다. 야후나 구글을 검색하면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화끈한 주장 - 음모론 - 만 깔려 있다. 아예 절충주의로 갈까 고민도 했다. 마지막으로 가해자가 누군가 하는 문제도 있다. 히틀러와 도당들이 홀로코스트의 주범이라는 주장과 독일인 전체가 가해자이다 라는 주장이 있다. 예컨대 1945년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는 독일인 전체가 가해자라고 상정하고 조사를 벌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책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왜 이 사건을 조명하는가? 예전에 샤프가 없을 때 연필을 깎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곤 했는데, 그런 태도로 문제의식을 첨예하게 가져나가야 했다. 나는 결국 홀로코스트에서 우연과 의도 중에 의도에, 희생자는 최소 600만에서 620만명 이상 - 집단 학살의 특성과 동유럽에서 이동 중 학살도 포함하면 - , 그리고 전체 독일인의 책임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책 한 권이 끝났다. 그런데 찜찜해서 폴란드, 체코의 학살현장을 나중에 다녀보기도 했다. 범행 장소에서 혼이라도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그런 것인데, 이런 사후 방황은 또 있었다. 과거 홀로코스트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희생자와 가해자, 그리고 절차에서 다 입장이 다르다는 사실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에서 몇백만 개의 사건이 있었는지 모른다. 과거 사건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수록, 지역적으로 광범위할수록, 인과관계가 복잡할수록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게 된다. 진실로서의 역사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진실을 추구하면서 자기 작업을 수정해 나갈 뿐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뭘까? 이번에 아이가 유괴 살해당했다고 뉴스에 뜨더라. 범인이 추정되는 사람의 혈흔이 렌트카에서 발견되었는데, 구속기소하고 법정 판단하는 것은 그런 증거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건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독도는 우리 땅인데, 국제사법재판소에 그 문제를 끌고 가면 패소할 확률이 높다. 국제사법재판소의 인적구성과 침략 시기의 자료들 때문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게 우리의 진실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고려대의 막걸리 찬가에 만주땅, 태평양도 우리 것이라고 나오는데 이건 고려대에서 말하는 소위 "진리"가 아니다. 100%의 신뢰성을 가진 주장을 채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1) 착종적 상태에 있는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무엇을 알려주는가?
2) 인식론이라는 건 지식을, 경험 세계를 가지고 와서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뜻이다. 이 입장에서 객관주의와 주관주의가 있다. 그리고 이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항상 새로운 의미로 반복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한다. 의미가 담겨 있다는 합의가 있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사건이라면 무엇이 있나? 6.25가 있을 것이다. 강만길 교수에 따르면 6.25와 함께 1910년을 들 수 있다. 한국에 독립적인 자본주의의 길이 있었는데 태클을 당해서 안됐다는 견해이다. 그 앞에는 임진왜란이 있다. 역사의 연쇄를 따라가면 교과서가 주목하는 사건이 줄줄이 나온다. 어떤 게 의미있고 주목할 만한 사건인가? 이 질문이 곧 "역사적"이라는 형용사의 의미이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김대중 정권 때 요직에 등용됐는데, 조선일보가 브레이크를 건 적이 있다. 사상논쟁이 시작되었는데, 김일성의 결정이 "역사적"이었다는 평가를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최장집 교수의 말로는 그 결정이 파장이 컸다는 뜻인데 조선일보는 "역사적"이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한 것이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역사적"이라는 의미에 긍정적이라는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소견서까지 받아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서울대 하면 뭔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중에는 논쟁이 흐지부지되었는데, "역사적"이라는 말의 무게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었다.

사실fact이라는 말은 역사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이것을 시간적 불가역성이라고 한다. 인간은 타임머신을 탈 수도 없다. 과거 독일 전직대통령은 "홀로코스트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후대는 기억하고 보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수평적 책임과 수직적 책임이라는 게 있다. 홀로코스트 당시 실험을 통해서 기술과 부를 함께 축적한 제약회사들, 그 결과를 지금도 독일인은 같이 누리고 있다. 빛을 함께 누린다면 그림자도 함께 가져야 한다. 이것이 수직적 책임의 뜻이다. 독일인의 한 정치인은 "아우슈비츠에서 풀이 계속 자라는 한 독일인에게 책임은 계속해서 있다"고 말했다.

인식주체와 독립해서 사실은 사실 그대로 있다. 문제는 사실 전달 되는 것이 까다롭다는 것인데, 한국 전쟁만 해도 그렇다. 한국전쟁의 발발시점은 보통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끝난 시점은 1953년 7월 27일 자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전시점과 종전시점에도 문제제기가 들어온다. 수정주의는 1948년 4월 3일에 이미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내전이자 국제전으로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전쟁 시작과 관련하여 남침, 북침, 남침유도도 서로 팽팽하게 맞선다. 또 외국 학자들은 자기네 나라의 전쟁에 자기 나라 이름 붙이는 것은 자기 나라 밖에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6.25라는 이름을 다시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은 어떠했고 비무장 민간인이 얼마나 죽었냐는 연구 결과도 다 다르다.

과거사위원회가 노근리 사건에 대해 카피한 파일을 준 적이 있다. 그게 쌓아놓고 보니 내 키의 두 배 정도였는데 그것을 넉 달 동안 팀으로 해서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것이 블랙박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을 하고난 후 연구팀 회의하면서 제출할 거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 학살 이야기가 나오다가 다음 장에 missing 표시되고 그런다. 한 두 번이 아니라 계속 그렇게 나온다. 고급 자료는 이미 저쪽에서 걸린 것이다. B급 자료라도 찾아서 A급으로 만들자는 생각도 해봤는데, 가해자 이름에는 까맣게 선이 가 있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남쪽과 북쪽 모두 학살이 벌어진 것은 분명한데, 위원회에서는 남쪽 문제에 주목해줬으면 했고, 자료는 미군의 전쟁 포로 범죄가 다수였다. 이런 것이 자료의 비대칭성이다. 당시 녹취된 방송에는 시점과 공간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그거 정리하려 해도 안 되는 것도 많았다. 내밀한 문서를 본다는 처음의 즐거움이 나중에는 참담함으로 바뀌었다. 민간인 학살 규명을 노근리 파일, 미국 문서에 기대하기란 어렵다. 미국 기밀 문서가 50년이 지나 해제되어도 실제로는 규명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하나 포커스를 맞춘 것이 이승만이었는데, 문건으로 학살 지시를 내린 것이 있는가 했지만 하나도 없었다.

랑케Ranke는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진실 규명의 화두는 우리를 인도해 줌에 분명하다. 그러나 북극성이 우리를 인도해 주어도 실제로 북극성에 다다르는 경우는 없다.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범위가 너무 넓고 층위가 너무 두텁다. 또한 정치적 사건일수록 진실은 착종되어 나타나고 진실의 단면이나 형태적 진실을 드러내기란 불가능하다. historical fact에서는 언론보도와는 다르게 수많은 하위사건들 - 자동발생적이지 않은 사건들 - , 인물들의 인과관계, 경제적 사회적 상태 등과 같은 것에 대해 사실을 선별하고 문제제기하는 희미한 선들이 존재한다. 역사적 사실이 복합 착종으로 뒤엉킨 문제군으로 보인다면 의의가 있다. 이제 이것을 도려내어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의 관점을 살펴 보자.

말이 좋아 camp라고 불리지만 학자들은 주관주의나 객관주의에 속한다고 할 때 한 쪽에 완전히 속한다는 건 거부한다. 카 또한 주관주의라고 하면 자기는 러시아 혁명을 연구했다고 하면서 오히려 화를 낸다. 그러나 여러 파장 가운데에서 어느 정도 기울었다고 하는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이다. 실제 역사가들은 주관주의에 거의 서 있질 않고, 비평가나 철학자가 보통 주관주의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학문의 발달은 왔다 갔다 하는 진자 운동을 계승해 왔다. 역사학에서도 진자 운동이 있었고 지금은 주관주의 쪽으로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통해서 흐름을 파악하는데, 대표적으로 카와 카의 저격수에 해당하는 젠킨스, 그리고 에반스를 다룰 것이다.

객관주의를 보면 사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선재한다는 뜻이다. 역사가는 과거에 영향을 줄 수 없으며 다만 사료들을 통해 검증하고 연구하여 역사상을 만들어 나간다. 주관주의는 사실들이 역사가를 통해서 구성된다는 뜻이다. 사건이 저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한 사건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식 주체의 구성적인 능력을 강조하면 주관주의, 외부의 것에 관심을 주면 객관주의이다. 예전 수업에 이순신의 생몰년도를 알아맞췄던 학생은 객관주의의 관점을 취했는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건이나 문헌을 줄줄 말했다. 그런데 그것을 구석에서 피식 웃으면서 듣고 있던 학생이 발언을 하더라. 그 학생은 이순신이 성웅으로 추앙되고 하는 이유가 박정희의 국민의 의식을 통제하기 위한 기획이었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친일 전력에 대한 부담감도 해소하고 말이다. 그런데 처음 학생이 문집들까지 인용하면서 칠판에 쓰는데, 이순신은 박정희가 가공하지 않아도 원래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쓰벌 하면서 강의실을 나갔다.

<천군>이라는 영화에 보면 이순신을 계몽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래서 다시 현대로 오는 설정인데, 사실 역사는 그렇지 않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는 없다. 주관주의의 인식 주체, 판단, 해석을 이해하려 하다가 데이비드 흄의 "존재는 피지각이다esse est percipire"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물체를 유심히 보지 않으면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처음 운주사에 갔을 때는 참 허름하고 휑해서 안 좋았는데 유홍준의 책을 읽고 다시 갔더니 소박한 민중의 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거다. 항상 거기 있는데 그것이 의미를 갖지 못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남녀 관계도 그렇다. 한 쪽은 그냥 무시하고 그러는데 다른 한 소박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인식 주체의 역사가가 주목하고, 사실 관계를 밝혀내는 과정이 그러하다. 민중적 역사관을 품은 역사가가 만적을 보고 그 측면을 강조한다면, 그 사건은 그제서야 지각된 것이다.

17세기의 데카르트는 과학을 실험, 관찰, 법칙, 입증의 사이클에서 똑같은 결과를 확인하는 것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안 되면 과학이 아니다. 문학? 당연히 과학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고 데카르트가 명시적으로 역사학을 비난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문경새재에서 안 막고 탄금대에서 싸웠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신립이 혹시 왜군의 스파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그런데 당시 신립이 가진 카드는 화투로 치면 피 11개에 해당한다. 광 같은 건 하나도 안 가진 것이다. 기상이 악화되어서 혹은 급하게 징집된 병사들의 전의 상실 등으로 해서 배수진을 쳤다는데, 이거 시뮬레이션 할 수 있을까? 음모설이 맞네 시체 치워라 그럴 수도 없다. 실험과 관찰이 안 되니 법칙 증명도 안 된다. 그렇게 역사는 수세에 몰려 있었다.

18세기에 들어와서야 역사학만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젊어진 역사"라는 말이 있다. 역사의 주제도 바뀌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 시대가 요구한 바를 담고 간다는 뜻이다. 직접 물속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따로 판을 짜는 것이다. 이게 당연히 전술상 유리하다. 19세기에 랑케가 등장해서 사료를 비판한다. 기록을 끌어모으면서 국가의 재정지원 - 당시는 국민국가의 탄생기였다 - 을 받는다. 예컨대 프로이센 같은 경우는 엘베 강에서 탄생해 여러 국가들을 규합해 연방국가를 이루고 지금의 프로이센이 되었다는 식이다. 국가의 공문서 기록을 통해 이런 주장을 한다. 세미나 방식으로 당파적 색채를 지우는 훈련을 한다. 이렇게 대학에 역사학이 생긴다. 엄정한 사료비판 위에 역사학을 세운다. "모든 일체의 이론과 선입견을 버리고 과거 사료로 들어가 내 입과 손을 통해 사료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이거 완전히 무당과 다를 바 없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화해가 굿을 통해 이루어진다. 역사가는 잊혀진 목소리를 재발견하고 말한다. 의병장 신돌석의 개인사를 통해 민중지향의 사회로 가고 있다는 의미 부여하고 그러잖아. 선대의 좌절된 희망, 목표를 후대가 이끌어가면서 기념관을 세우고 한다. 역사가는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는 안중에 없다. 실제 랑케는 이런 작업을 많이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 때 - 1876년 존스홉킨스대학에 역사학이 처음 생겼을 때 - 는 미국 사람이 독일에 가서 랑케에게 배웠다. 19세기에는 역사학위가 생겼다. 이성도 역사 속에서 합쳐져서 제도화되고 문자화된 것이니, 현재 모습은 역사 연구를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그림 형제 같은 경우도 문학사가에 해당한다.

여기에 곧 반란이 일어난다. 랑케의 제자인 드로이젠이 등장한다. 랑케는 이론과 선입견의 배제를 주장했지만, 사실 역사가는 눈을 사람에게서 빼낼 수 없는 것과 같이 이론의 스펙트럼 내에서 착색된 상태에서 포착된 것을 파악할 뿐이다. 이론과 선입견의 원천 배제는 불가능하다. 나쁜 의미의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면 인정할 수 있다. 당파적이더라도 한 민족이나 국가를 위한다면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스승의 입장에서는 갑갑하다. 그 당시 랑케가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했다. 드로이젠은 거기에 대해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응대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객관주의가 절정일 때조차 주관주의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한편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패가 갈린다. 노동자는 보통선거권을 주장하고 자본가는 강고한 노동법을 주장한다. 맑스는 "모든 역사는 노동하는 자의 역사이자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그는 역사를 소위 5 단계설로 보고 역사 발전의 법칙을 찾고자 했는데, 이 말은 곧 본질적인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회의주의의 시각이 나타날 무렵에도 객관적인 시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 19세기 말이면 양 쪽 주장이 다 나온다.

딜타이, 크로체, 콜링우드, 카. 이 네 사람 모두 공통적으로 얘기되는 것이 주관주의 편이라는 점이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현재 인간의 문제의식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강만길 교수가 크로체를 열심히 읽었다. 그래서 독립과 단일국가, 해방과 민족주의라는 시대정신, 이상을 가지고 과거를 다시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가 2, 30만권 팔렸는데 인문학 책 치고는 엄청난 수치다.

콜링우드는 "역사는 과거의 사상을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가 과거보다 먼저 나온다는 사실이다. 현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과거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 현재 이 순간은 과거에서 유래해서 물려받거나 극복해 간다. 그래서 미래로 가고.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면 3사람의 교수가 보통 심사한다. 한 사람한테 A 받고 나머지한테 B 받으면 논문을 다시 고쳐야 한다. 두 명한테 A 받고 한 명한테 B 받으면 논문을 그대로 싣는다. 두 사람한테 A 받고 한 명한테 C 받으면 역시 논문을 고쳐 낸다. 그런데 C를 만약 많이 받으면 그건 절대 실으면 안 된다. 어쨌든, 나는 정말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하다는 걸 학자 공동체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훈련 속에서 탄탄해진다. 방법론적으로 끊임없이 긴장하면서, 진실은 아니라고 무의식까지 긍정하면서 문을 열어야 한다. 이것이 잠정적 진리이다. 어느 순간 확고한 반박이 오면 폐기해야 된다는 것인데, 칼 포퍼가 그런 말을 했다. 역사학에서 이야기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해석을 통해서 재구성된 결과이다. 중요성과 의미를 시간이 지나도 깎이지 않고 유지되는 사건이 있다. 로마 공화제나 대영제국의 몰락에 대해 미국은 자기 패권의 흥망과 연결하여 고민한다. 이런 사건은 계속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면 고려의 만적 같은 경우는 다시 조명되는 경우이다. 사건은 과거지만 역사적 사실은 현재적이다. 즉 재구성된 것이다.

독일 사람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면서 간절한 소망을 가진다. 경험공간에서 경험한 것에 대비해 기대지평이 만들어진다. 현재의 문제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아내는데, 여기서 인간이 볼 것은 역사 밖에 없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유토피아이다. 역사가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과거 사람들이 꿈꾼 것이다. 인식 주체 안에서 공유하는 관심, 인식, 희망이 역사를 만들어 갔고 또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것을 포착하는 것이 역사가의 일이다.

카가 말한, 또 하나의 유명한 경구가 있다. "사실이란 결코 생산 가게 좌판 위의 물고기가 아니다. 사실이란 큰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이다. 물고기를 잡는 것은 때로는 우연에도 의지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역사가가 사용하는 도구는 어떤 물고기를 잡을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숙련된 어부와 선장은 감을 잡고 알아서 그물을 던지지 계속 표류하면서 마냥 기다리거나 무작정 그물을 던지지 않는다. 현재가 과거를 선택하게 하고 현재의 의식 범주에 과거가 들어오지만 그것도 끝은 아니다. 테제가 있으나 맞지 않으면 고쳐가면서 말이다. 현재의 관심과 과거의 사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있다. 학자 공동체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카는 현재를 먼저 얘기했을 뿐 완전히 주관주의자로 볼 수는 없다. 역사가들 반성 좀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젠킨스Jenkins에 대해 얘기해 보자. 사료를 포함해서 모든 역사적 텍스트는 다만 텍스트에 불과하다. 역사적 텍스트도 텍스트의 일부에 불과하다. 텍스트는 해석의 폭이 넓다. 사료가 진실이라고 인정할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 동학 때 공식역사서는 난亂으로 표시되어 있다. 난이라고 규정해서 수십 년 동안 내려오다가 4.19 때 다시 해석하려고 했다. 그런데 박정희가 등장하면서 또 실패했다. 그 후 동학농민전쟁 -> 동학농민운동 -> 동학농민혁명으로 바뀌었다. 역사가들은 1차, 2차 사료를 나누면서 1차 사료를 중시한다. 그런데 젠킨스는 이 차이가 전혀 없다고 본다. 역사자료연구는 사금 채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 재구성이라는 말을 쓰는데, 주관주의는 재구성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인식 주체에 의한 구성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역사학은 학문이 아닌, 주장에 불과하게 된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에반스Evans는 고민에 빠진다. 젠킨스의 얘기가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직업적 역사가는 인식론에 취약하다. 역사가는 자꾸 실제 역사서를 써보라고 하지만 노는 마당이 다르니 젠킨스는 그 쪽으로 절대 안 간다. 자기가 이길 수 있는 게임 룰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에반스는 재구성이라고 표현하면서 객관주의 쪽에 선다. 사건을 겪은 사람들은 문서를 남긴다. 행위자, 그리고 문서 남기는 기록자. 이 들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은 역사가이다. "과거의 흔적이 문서에 남아있을 뿐이다." 흔적들 가운데 유의미한 것들을 끄집어내서 구성한다. 흔적이라는 말을 통해서 에반스는 젠킨스의 비판을 피해간다. 때로는 진실에 가까이, 때로는 진실과 떨어져서 재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역사가들이 에반스에게 고마워한다. 이 쪽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아 젠킨스에게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실제 역사가들, 즉 운동하는 역사가들은 거의 에반스, 카, 젠킨스의 스펙트럼 사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by Jerohm | 2008/03/17 22:48 | 수업 | 트랙백 | 덧글(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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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자비♡ at 2008/03/20 09:24
맏을 글→믿을 글
포류하면서→표류하면서
공식엿사서는→공식역사서는

복학하고 싶드아 -ㅁ-
Commented by Jerohm at 2008/03/20 12:04
역시 이렇게 오타 지적해주시는 자비님 ㄳ
Commented by 현우 at 2009/04/07 17:53
"역사는 과거의 사상을 역사가의 정시 속에서 재현하는 것"
-> "역사는 과거의 사상을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재현하는 것"

"수려된 어부" -> "숙련된 어부"
Commented by Jerohm at 2009/04/08 09:05
이렇게 오타 지적해주시는 현우님 ㄳ
Commented by 경섭 at 2019/04/15 20:14
까마득한 선배님 덕분에 수업 때 놓친 부분 깨우치고 갑니
Commented by 정태 at 2019/04/17 01:05
이런 게 아카이브네요... 까마득한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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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아카이브네요....
by 정태 at 04/17
까마득한 선배님 덕분에..
by 경섭 at 04/15
뜨끔하군요
by 베풀어 at 08/21
완전좋아
by 김진영 at 06/05
ㅋㅋㅋㅋㅋ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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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알아보리다
by 합정 at 06/01
술 끊고 몸 관리 해라..
by aidin at 10/21
24-70 은파시오 쓸데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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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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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샘은 또다른 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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