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by Jerohm
이문구
위암. 2003년 2월 사망.

2000년 동인문학상 수상 후 이듬해 2001년 2월에 병원을 갔다. 2000년 3월 11개월 전에 위내시경 초음파를 했다. 해마다 정기검진을 권했다.

술과 담배를 젊을 때부터 좋아했다. 45세부터 틀니를 했다. 2000년 3월 종로 치과와 정기검진. 검진에서는 괜찮은 것으로 나왔다. 그 전에 위궤양을 앓은 적이 있다. 아문 흠집이 있었다. 위궤양은 있으나 종양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내시경 검사 후 병원을 안 갔다. 불편하지 않아 안 갔다. 2000년 6월 보령을 갔다. 점심을 먹는데 구토를 했다. 포도주를 조금 먹었다. 소화가 안 된 것으로 알았다. 약국에서 처방. 가라앉아 평상으로 돌아갔다. 9월부터 아침을 먹으면서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위에서 위궤양이 심해진 것이다. 병원행을 권했으나 단체장 일을 맡고 있고 찾는 사람이 많아 하루도 집에 없었다.

술은 자제한 편이지만 조금씩은 먹었다. 50살 이후 자제를 많이 했다. 95년 보령을 내려가 위궤양이 심해 서울 사람과 차단한 적도 있었다. 5년간 술을 끊었다. 간염도 앓았다. 5년간 단절한 적도 있다. 농사도 지으면서 고추도 심고 야채도 심고 무공해 농사를 지어 먹고 녹즙도 먹고. 위궤양이 나았다. 간염도 완쾌했다.

2000년 9월 이후 계속 미뤘다. 2001년 2월까지 미뤘다. 베트남 작가회의, 민족회의와 교류위해 1월 일주일 방문. 경기대 야간 강의. 2001년 2월 백병원에서 위에 종양이 생겨 수술을 권했다. 즉시. 퇴근해서 말도 못했다. 저녁 식사 후 정밀검사를 해야한다고 둘러서 말했다. 내일 입원해라고 했다. 어디가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냐고 물었다. 다음 날 입원, 일주일 후 수술. 위에 종양이 생겼어, 도려내면 된다. 걱정하지 말라(의사).

수술 당일 의사가 위 상부에 종양이 있어 위를 몽땅 들어낸다. 소장하고 연결한다. 식도와 소장을 연결했다. 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수혈도 안 하고.

수술 후 한 달 입원 후 퇴원. 하루에 소화 잘 되는 음식 9번 조금씩 먹었다. 수술 후 6개월 항암치료했다. 6개월 매번 입원해 일주일 열흘. 6회 맞고 퇴원. 체중이 3~5키로 빠졌다. 60대에서 40대로 빠져 피골이 상접해졌다.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시키는대로 다 했다. 신장이 나빠지더라. 좋은 세포도 같이 죽이더라.

매달 정기검사를 했다. 엠알아이 CT 등. 가을부터 학교 강의도 나가고 주변 일도 했다. 짧은 산문도 쓰고, 심사도 보고 일상적인 생활로 정상적인 일을 했다. 2년 간. 항암치료하며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소화제도 먹고 그랬다. 2002년 어느 날 계단 올라가는데 숨이 차다고 하더라.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했다. 산보도 못 간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입원했다. 늑막에 물이 차 폐를 누른다. 원인도 모른 채. 3~4일 입원해 등 뒤에 주사기로 빼낸다. 링겔 한 병반 뺀다. 2002년 7~8월 두 달 사이에 물빼기 5차례 반복. 어느 날 물이 안 생기더라. 호흡이 돌아왔다. 조심하고 무리하지 말고 즐겁게 살아라고 하더라(의사). 의보 안 되는 비싼, 먹는 항암제 처방.

2002년 10월 무생채와 밥을 많이 먹고 싶다. 미식가. 본인도 음식을 잘 만들고. 11월도 음식을 잘 먹더라. 12월 집에서 열이 펄펄. 주스를 마시고. 식은땀과 열. 열이 가라앉았다. 그 다음날 괜찮다고 했다. 항암제 먹다가 몸이 너무 힘들어 음식도 못 먹고. 회복되면 또 먹자고 해 한 달 항암제 쉬었다. 먹다말다 반복. 일주일 쉬었다 먹고. 피부가 노란 빛이 나더라. 2002년 12월 이후 외출도 잘 못했다. 딸이 안색이 안 좋다고. 커피 세 모금. 흰자가 노랗고 온몸이 노래. 2003년 1월 중순 토요일 즉시 입원했다. 45일 입원. 이틀 집에 와서 마무리. 일주일 후 사망. 환자만 입원시키고 그 다음날 시술. 담도 쪽으로 내려갔더라. 복부를 째 밖으로 담즙을 빼냈다. 매일 양을 체크. 죽기 전까지 계속 시술. 담즙만 빼면 좋아진다고 했다. 30일 뺐다. 물이 잦아들지 않고 계속 고였다. 음식도 잘 못 먹고. 원장이 이틀 회진을 안 돌더라. 2월 중순.

의사 : 안으로 넣는 시술을 했는데 안 된다.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수술도 약도 아무것도.
2층 원장 : 말기예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최선을 다 했다. 편하게 해 줘야한다.
임씨 : 할 말이 없더라.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환자에게 말 못하니 원장이 해라. 13층까지 올라갈 수가 없더라. 운 표정.

별 얘기 없었다. 준비물 사느라 늦었다고 하고 휠체어 타고 복도에서 운동시켰다. 다음 날. 환자가 홍과장이 왜 복도로 불렀냐고 물었다.

부인 : 물 빼는 부분을 안으로 넣을 수 없다고 했다. 편하게 들어라. 담도에 문제가 생겨
이 : 담도에 종양이 생겼대?  문제가 생겼대?
부인 : 내 말을 다르게 듣지 말고 수술 전과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라. 원장이 내일 회진할 거다. 그 동안 치료한 거 애썼다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세요.
이 : 고개 끄덕

다음 날, 원장이 회진돌며 다 내보내고. 환자와 일대 일. "퇴원하세요"라고 했다. 회진돌 때는 앉아서 항상. 앉아있더라.

이 : 집에 가서 마무리할 게 있다고 허락해달라고 했다.

그 전 홍과장과 레지던트에게

이 : 치료해줘서 고맙다. 끝까지 해달라. 마무리할 게 있으니 허락해달라.
홍 : 환자가 다 알고 있는 것 같더라.

즉시 퇴원했다. 링게르, 담즙 빼는 것 달고. 작가회의 사무국장 이윤복 씨. 아픈 와중에도 동시집을 계속 썼다. 산문 해놓은 것 마무리하고. 아들에게 마무리 부분 치도록 해서. 봉투 두 개를 이씨에게 줬다. 3년 전 100만원(계약금) 받은 게 있는데 주기로 했다. 누구 부탁으로. 김정한 씨(작가회의 상임이사)가 하는 출판사. 동시집은 창비로.

걷지도 못하고. 악화돼. 엠뷸런스 불어 이틀 후 병원으로 갔다. 재입원. 일주일 후 25일 그날 밤 운명했다. 통증을 호소했다. 몰핀 주사.

병원에서 중환자실을 권했다. 의식이 뚜렷. 중화자실에서 이틀 있었다. 환자가 싫다고 했다. 다섯 병상 혼수상태인 사람만 있었다. 병실이 모자라. 정신이 맑은 사람은 혼자. 여기보다는 병실이 낫다. 간호사가 수발하는 차이 밖에 없다. 면회 시간 아침 저녁에만 싫다. 일반 병실로 나와 이틀 만에 운명. 후배와 가족, 30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틀 전 저녁 때 이 (아들에게) : 아빠가 혼수상태가 되거든 절대 이틀을 넘기지 말라. 산소호흡기를 꽂아 장시간 연장시키지 말라. 이틀 돼 소생 안 되면 산소호흡기에서 엄마하고 동생하고 손잡고 하나 둘 셋 하고 호흡기를 떼라. 절대 연장하지 말라.

무모한 짓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수 상태는 안 왔다. 중환자실에서 옮기면서 "병실을 빼지 말라"고 했다. 가족들이 있을 수 있도록. 중화자실 복도에서 쭈그리고 있지 않도록. 간이 산소호흡기.

유언. 번거롭게 장례문제로 폐 끼치지 말라. 번거롭게 하지 말라. 묘지를 만들어서 하지 말라. 화장해서 관촌 솔 숲에 뿌려라. 절대 다른 사람 의견 쫓아 묘자리 사서 하지 말라. 이문구 문학상 등 이름을 붙여 하지 말라. 부질없다. 스승 일도 마무리 못하는 마당에. 나는 괜찮다. 여한없이 살다가 간다. 너무 슬퍼하지 말라. 봉분 만들지 말라. 제사상 차려 절하고 그런 거 하지 말라. 그 날 아버지 생각하면서 저녁이나 먹어라. 가족끼리.(아들이 간소하게 해서 처음만 했다. 내년부터는 안 할 생각. 저녁 먹고)

국제적인 시대에 외국에 나가 살 수도 있고 제사 때문에 왔다갔다 발목 잡는 거 바람직하지 않다. 마음이고 정성이고 생각이다.(평소의 지론)

본인은 할아버지한테 한학을 배운 유학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 자율을 강조했다. 자식들에게도. 유언도 별 게 없었다. 이틀 간 아들에게 "너 하고 싶은 것 하고 살아라.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는 거 좋은 거다." 보고싶은 사람 불러달라고 해 이호철, 강형용(강원용 목사 동생, 내과 의사, 동리 이후 존경하던 사람) 등 몇 명이 왔다. 폐 끼친다고 안 한다고 하는 것을 옆에서 권해서 몇 명 왔다. 연락 안해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 흉한 모습을 안 보이려 하지는 않았고 자연스럽게 오는 사람들 만나 그 동안 못한 얘기를 나눴다.

부인이 잘 못하면 혼내줄 거니까 했더니 "당신이 사는 영역이니 잘 살거다. 후배들이 뭐라고 해도 절대 흔들리지 말라." 두 어 차례 이상 얘기했다.

서울의 집, 보령의 조립식 주택이 전부. 산복 서울예대 영화과 연출공부 28세, 자숙 27세 엘지. 5남 1녀 넷째인데 형들이 육이오 때 몰사. 동생과 조카.

임종하고 마무리하고 후배들이 서울대 병원으로 옮기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안치해서 장례. 4일장. 부조도 받았다. 후배들이 알아서 했다. 건강할 때도 화장문화를 추구했다. 화장이 바람직하다. 누누이 당신도 명을 다해서 자연으로 갈 거다. 깔끔하게 편하게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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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취재록 무단 발췌함. 인턴하다가 이 취재록을 보고 이문구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 취재록이 어떻게 기사로 '축약'되었는지를 보고 나서 기사라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글쓰기 프레임인지를 알게 되었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401632

덧붙여 이문구가 이름 붙이는 짓 그렇게도 하지 말라고 유언까지 남겼는데 그거 무시하는 넘들이 있다.

http://isplus.joins.com/enter/culture/200608/02/200608021201050472020500000205010002050101.html
by Jerohm | 2007/03/05 19:17 | 메모 | 트랙백 | 덧글(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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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박동수 at 2007/03/05 21:29
아까운 분 한 분 가셨구나...
Commented by Jerohm at 2007/03/05 21:38
관촌수필 읽어봤냐, 박완서 같은 넘이랑은 급이 다르더만.
Commented by at 2013/09/02 19:16
박완서 샘은 또다른 위대한 한국문학의 봉우리!
Commented by 자비♡ at 2007/03/06 01:15
그래 기사 저렇게 써야지ㅆㅂ
Commented by Jerohm at 2007/03/06 11:02
저걸 좀 더 다듬으면 손영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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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아카이브네요....
by 정태 at 04/17
까마득한 선배님 덕분에..
by 경섭 at 04/15
뜨끔하군요
by 베풀어 at 08/21
완전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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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 재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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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알아보리다
by 합정 at 06/01
술 끊고 몸 관리 해라..
by aidin at 10/21
24-70 은파시오 쓸데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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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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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샘은 또다른 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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